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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어둠의 심연(solo exhibition) 기 간: 2018.05.11(fri)-2018.06.15(fri) 관람시간:11:00-19:00 일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입니다. (5월22일,6월6일,13일) 장 소: 오픈스페이스 배 전시장 작 가: 김상연 작가와의 대화 :2018.05.11(fri) 오후 6시 아무리 생각해도 미술 평론가들은 흥미로운 작품을 따분하게 만드는데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 같다. 김상연 작가의 개인전을 앞두고 우리가 이 특별한 전시의 표제를 <어둠의
심연>으로 정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가 1902년에
쓴 소설 <Heart of Darkness>를 우리말로 바꾼 제목 어둠의 심연은 주인공 말로가
아프리카 콩고에 파견된 커츠라는 사내를 만나러 가는 여행담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맥락을 지배하는
이 문학작품의 제목을 따서 현대화된 동양화 작업에 의미를 불어넣는 해석도 그럴싸하다. 김상연의 미술을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비판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평론도 있으니까. 난 모르겠다. 난 미술평론가이기 전에 사회학자지만 그런 분석을 반은
알아듣고 반은 흘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나는 이전부터 작가의 그림이 이곳 오픈스페이스 배의 전시장에 걸린 모습을 상상했다. 뭔가 하니까, 건물의 지하를 고쳐서 만든 이 장소는 들어올 때 늘
컴컴함 속으로 빨려 드는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술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벌어진다. 복잡한 행정도 진행된다. 전시 공간은 이보다 더 깊숙이 내려가야
한다. 긴 나선형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 되는 이곳은 마치 빙빙 돌아가는 턴테이블 위 엘피에 바늘을 올리는
일처럼 번거롭고도 동시에 하나의 제의(ritual)같은 과정을 거치는 예술적인 장소다. 바로 여기에 엄청나게 커다란 검정-김상연의 작품이 벽면을 채우는
광경이 어떨까 미리 생각했다. 어둠의 깊은 층에 제 자리를 잡은 엘피판처럼 시커먼 대작의 모습, 그것은 어둠의 심연이다. 작가가 자신의 수묵화에서 지나친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그 나름의 실천이다.
나는 예술가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김상연 작가의 중용에 가까운 신중한 태도가 그가 했던 언술인지, 아니면
평론가들의 해석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가 본인의 작품에 너무 많은 의미를 읽어내려는 일을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자 이야기를 해보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그린 거대한 검정색 의자가 첫 번째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의자 그 자체가
품은 존재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권력의 문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격언을 우리는 안다. 누군가의 부재가 그 존재를 더 커다랗게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전쟁영화 <파비안느>(1979)나 갱스터영화 <언터처블>(1987)의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싸움터에서 희생된 친구들의
빈 의자를 치우지 않고 살아남은 주인공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술자리는 얼마나 인상 깊었나. <존재> 연작은 지금 그 의자를 떠난 인격체가 남긴 힘이나 사랑을 전한다. 작가는
나같이 급수가 높지 않은 관찰자의 이런 감정을 위에서 내려찍듯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우리와 같이
자신의 그림을 지긋이 보길 원한다. 그가 그린 작품에 앞선 놓인 찬사는 너무나 타당한 것이지만, 그 텍스트나
이야기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곤란하다. 김상연은 현실 세계의 얕음에 대비하여 자기 작품이 품은
깊은 사색을 두려한다. 하지만 이 세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일부로서 예술
또한 그렇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은 미술 가운데 권력 행위나 인간 본성에 관한 통찰을
완전히 배제한 작품이 얼마나 될까? 동시대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김상연의 회화가 사회적인 파급력을 쥐고
흔들 만큼 독점적인 지위에 있는가? 세상일은 간단하지 않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작가는 단지 세계로부터 자신의 감각과 윤리를 따로 떼어내어 보존하려고 애쓴다. 이와
같은 예술의 유한성이야말로 오히려 그의 그림을 매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나는 의자를 그린다. 이 그린다는 행위는 의자라는 소재를 끌어 들여와
내가 말하고 싶은 인간과 욕망의 관계를 좀더 실제적읜 회화방법으로 극대화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우선
친근한 일상적 사물을 내 자신의 시각방식으로 변환, 이미지화 하여 인간의 정신을 새로운 시간이나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작용을 하게 한다. 의자라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그렇거니와 표현방법에 있어서 최소한의
형상만 남기고, 나머지 사실적 여지는 어둠(먹)속에 숨겨버린다. 그러면 먹의 형상에서 느껴지는 충격 뒤에는 얼마간의
여운이 남게 된다. 이것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공간의 텅 빈 사이를 말함이며 일순 모든 물질적인 실존을 떠나 정신을 자신의 깊숙한 내면의 곳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기운생동이다. 하여 나는 그린다는 행위로 말미암아
온몸으로 숨쉬고 있다고나 할까.
The meanings given to this
lump of desires to unconventional, uncommon and novel object from recognition
of conventional and schematic object and then enter the world of consciousness
which is the area of reasoning 작품 이미지
존재, 291X210cm,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