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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민은 여느 동시대의 예술가처럼 예술에 대한 실체 그리고 자기 창작에 대한 의심들을 고민한다. 그런데 이 고민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성찰과도 같은 작가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늘 은폐되어 있거나, 혹은 위장된 상태로 있기 때문에 그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황규민은 다소 불가해 보이는 이 단서들을 두고 어떻게 작업을 이어가는 중일까. 아마 지금의 물음이 이번 전시를 쫓아가는 시작점일 것이다. “뭄뚱이는 소 같고 꼬리는 나귀와 같으며 낙타 무릎에 범의 발톱에 털은 짧고 잿빛이며 성질은 어질게 보이고 소리는 처량하고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으며 눈은 초생달 같고 두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름은 되고 길이는 한 발 넘어 되겠으며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이 자벌레 같고 코의 부리는 굼벵이 같으며 코끝은 누에 등 같은데 물건을 끼우는 것이 족집게 같아서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넣는다.” <열하일기>의 상기(象記) 중 낯선 것을 떠올리고 설명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여기 전시장에 발을 들인 자들 또한 그 상황에 봉착했으리라. 벽면에 누렇게 들러붙은 글자와 누더기처럼 보이는 형상들 그리고 뜻 모를 ‘수련’에 대한 이야기. 중요한 것은 황규민이 왜, 이곳에 이러한 상(象)을 만들었는지다. 처음 본 코끼리를 묘사하는 일이 분명하지 못한 것처럼 이번 전시에 놓인 난해한 작업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 거슬러 올라가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는 창작에 있어 ‘떠오름’에 관하여 일종의 고통을 호소했다. 이는 꽤 오랫동안 본인을 괴롭혔던 ‘모방’과 ‘참조’로 점철된 자기 작업에 대한 의심으로 누군가의 예술을 기점으로 만들어지는 작업에 대한 반성 또는 혐오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예로 1년 전 대전에서 진행된 자신의 개인전을 두고 ‘죽은’ 전시라고 했을 만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그 ‘떠오름’에 대한 모방 그리고 자기 부정이라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동한다. ▶전시명 : 상록수 ▶참여작가 : 황규민 ▶큐레이터 : 김정훈, 유경혜 ▶코디네이터 : 한지원 ▶도움 : 방기철 ▶촬영 : 김기석 ▶전시장소 : 오픈스페이스 배(부산 중구 동광길 43) ▶전시기간 : 2024년 11월 30일(토) - 12월 28일(토) ▶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 7시(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오프닝 : 2024년 11월 30일(토) 5시 ▶주최 및 주관 : 오픈스페이스 배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 |